[MOTivation] 못 MOT 단독 콘서트 소통 疏通




2007-09-08 흙 @압구정클럽

장장 14개월이라는 가히 살인적인 고통을 안겨 준 못에 나는 고열을 안고 찾아갔다. 입구 위에 걸려 있는 팬카페의 현수막이 너무나 반가워 웃음이 나왔다. 무리한 걸음이었기에 이전 만큼 시간 여유를 둘 수 없었고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늦은 번호(162)를 받았다. (100번을 넘긴 건 처음이었다.) 앨범을 하나씩 더 사라셨던 명령을 이렇게나 늦게 실행에 옮기는 것을 용서하옵시고...를 외며 1집과 2집을 샀다. 여섯 번째 1집, 세 번째 2집. 1만원이라는 가격은 여전히 분노였고, 공연 내용과 수준에 비해 입장료는 항상 내고도 빚지는 것 같은 기분이라 반작용으로(?) 어차피 공연 때마다 버릇처럼 앨범을 더 사곤 했으니까.

압구정. 기억. 쌀국수. 잊혀진 분노들과 이해. 그리고 이해. 별개의 각오들. 알약.

입장할 때 팬카페에서 뱃지를 나누어 주었다. 수량에 제한이 있어 두 종류 중 하나만 고르라기에 무심히 꺼내 봤더니 둘 다 너무 예쁘잖아! 양손에 하나씩 들고 무지하게 망설였다. 결국 '골라 달라'는 나의 농담성 요청에 (나중에 카페글을 보니 Eriveri 님인 줄 알았으면 인사라도 할 것을...)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냥 다 가져가라는 답을 들었다. 떼를 쓸 생각은 아니었었기 때문에 기뻤던 만큼 미안했지만, 횡재다!

압구정클럽은 처음이다. 아직 아마추어 주제에 직업병만 먼저 든 것인지 불과 일주일 전 있었던 롤링홀에서의 작업을 상기하며 재빨리 콘센트의 개수를 세어 보았다. 공간적 여건에 맞는 영상과 인터랙션을 가늠하느라 잠시 차가워졌던 나는 그러나 느슨한 자유를 즐기기 위한 팬으로서의 준비에 들어갔다.

수십 번 반복재생되는 close의 뮤직비디오는 그동안 곪은 영혼에는 성수와 같았다. 나는 지치는 감도 없이 14개월 만에 가라앉기 시작한 통증에 안도했다. 어차피 집에서 들을 때도 무한 반복재생을 하기 때문인지 오히려 친숙했다.

(the set list noted by T-정훈 & 따뜻한 @못 밴드 팬클럽)

- opening by 이지형

노르웨이의 숲
Nobody likes me
Cafe' fermata


나는 이지형이 누군지 몰랐다. 너무 노련해서 약간 거북할 정도였다.(칭찬이다.) 그런데 아무도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외치기에는 너무 행복해 보였다. 내면을 어찌 외양으로 알랴마는. 감기에 걸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기량을 조절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실력파와만 교류한다는 건가요? 왠지 이언의 흐뭇한 미소가 보이는 것 같았다.


-1부

엇! 달라졌다! 처음 본 순간 그렇게 느꼈다. 특히 이언은 분명히 달랐다. 여유를 가진 것 같았다. 연애를 하시나. 그것은 2005년 처음 보았을 때 그에게서 느꼈던 자신감과 집중력에서 오는 차분함과는 다른 종류의 여유였다.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고 보여 줄 수 있으니 그대로 해내리라. 이후 거의 빠짐없이 보았던 공연들에서는 그랬다. 그는 무대에 선다는 것에 대함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고) 통제력과 책임감에서 비롯된 긴장감을 가득 품고 있었다. 일하는 자의 조용한 열기. 스스로에 대한 신중한 요구들. 자신을 향한 엄격한 시선. 내부로의 몰입.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도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누가 왜 왔는지 전부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가 새삼 증명해야 할 것은 없다. 그와 그의 음악 자체가 이미 존재하고 있으므로. 손님은 관객이다. 자신이 스타임을 비로소 인정한 것 같았다. 이제 그는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외부를 직시한다.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타인에게 편안하게. 기뻤고. 안도했다.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그 자리에서 안락함을 느끼는 스타 만큼 팬을 안심시키는 것은 없으리라.
그렇지만... 내게 인상적이었던 자신과 결과물에 대한 지배욕과 3년이 지나고서야 조심스럽게 어렵게 형성되는 대중에 대한 자신감, 두 가지 모두 흐트리지 않고 동시에 가지고 갔으면 하는 바람. 어느 한 편에 치우쳤을 때의 결과를 이미 경계하고 있으리라는 믿음. 여느 스타와 달리 끝까지 눈부시게 투명하게 빛나줄 것만 같은 꿈. 이러한 고도의 기대 수위를 못은 만족시켜 주지 않을까.

1. 이상한 계절

입장 직전 복용한 해열제와 못이 내뿜는 막강한 최음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이전보다 집중력이 떨어진 채로 그러나 너무나 굶주려 닥치는 대로 못에 빠져 들어갔다. 마치 떠났던 엄마를 만난 아이처럼, 원망감을 표현하는 주먹질처럼. 느끼기보다 안기는 게 급해 섣불리 다가가 휩싸이고만 싶었다.
곡 끝에 14개월 만이라는 이언의 말을 애써 지웠다. 눈물 정도야 볼 사람도 없으니 괜찮겠지만 왈칵 통곡이 나올 것만 같아서. 도대체 알기나 하시나요? 그 시간의 의미를...... 그렇다고 팬을 위해 음악을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없다.

2. 완전한 세상

하얀 와이셔츠.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언의 하얀 목선도. 만져 보고 싶은 것도, 그럴 수 있다 해도 차마 손대지 못하리란 것도 모두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나한테는 그런 종류의 욕구가 없는 줄 알았었다. 아니, 어쩌면 그를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인지도. 하얀 와이셔츠의 지이는 이언과는 또 달라서, 이언이 구름 위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면 그는 바람 속을 달리는 모습에 가까웠다. (나 시각적 자극에 지극히 둔감했던 거 맞아?)

3. 시니피에

설명하지 않으셔도 다 알고 있답니다. 꼭 이언의 멘트를 먼저 들었던 것처럼, 그러한 과정을 알고 있던 것처럼, 11 over 8에 이어 이 곡을 들려 주며 못의 진정성에 대해 설파했던 나다. 멋없는 모습을 부인해야 멋있어지는 것은 아니더라. 내 안을 버리고 밖에서 무엇을 찾을까. 허상이 더 불쌍하다는 데 나는 동의한다.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냥 아프겠다. 그렇게 마음 먹으니 살 수 있었다, 나는.

4. 나는 왜

이 정도야... 덜 아픈 곡. 지나간 이야기. 2집 발매 전에 콘서트에서 여러 번 들었기에 새삼 신곡이라는 기분은 별로 들지 않았다. 올해보다 불안정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더 따뜻해졌던 시간.

5. 카페인

터졌던 함성. 아니 한숨? 1집에서 내가 처음으로 가장 좋아했던 곡이라 더 반가웠다. (점차 바뀌어 결국엔 현기증을 제일 좋아하지만.) 음향이 정말 안 좋았다. 사운드홀릭에서는 주로 저음이 뭉개졌던 반면 압구정클럽에서는 고음이 싹둑 잘라졌다. 언 님 목소리를 내게 돌리도. (그냥 진행하시는 게 조금 의아할 정도였다. 하울링 때문이었나?) 중첩파의 증폭 현상을 근본적으로 방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를 상쇄시킬 수 있는 파를 자동으로 발생시키는 장치 같은 게 있을 것도 같은데 말이다.

6. Wonderwall (Org. Oasis)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못이 오아시스를 연주했다는 것을 오아시스와 그 팬들은 영광으로 여길 것이다.

7. The Blower's Daughter (Org. Demian Rice)

전보다 더 하시잖아! 경지에 오르신 듯. 기절하는 사람이 안 나온 게 신기하다.

8. 그러나 불확실성은 더욱 더

굉장히 안정된 연주였다. live에서 그런 사운드가 가능하다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았다. 세션 분들께도 경의를 표한다.
조명 설비가 다른 곳에 비해 좋다고 생각했고 공연 내내 열심히 조작해 주는 기사 분들의 성실성도 느껴졌지만... 색채가 너무 유치했다. 곡들을 미리 소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즉석에서 연출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려고 해도 그 감각이 실망스러웠다. 조명이 분위기에 미치는 효과가 얼마나 큰가... 이제는 편하게 비판만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나도 부끄러운 작업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9. Love song

아~ 행복. 1집 곡들을 이렇게 많이 해 주실 줄이야. 그런데 이언 님 자꾸 왼손을 아랫배에 두시는 게 그냥 새로운 버릇인지 아니면 어딘가 불편하신 건지 몰라 공연 내내 신경이 쓰였다.

10. 울트라맨이야 (Org. 서태지)

누가 들어도 못인 줄 알 수 있는 리메이크가 그대로였다. 앨범 수록곡들 못지 않게 친숙해진 곡.

11. 사랑없이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1집의 love song이 생각났었지.


-2부

12. I am by 요나

내 귀를 의심했다. 요나가 못의 i am을 부르는 것이었다. 못을 추종하게 된 노래라 개인적으로 의미도 깊은데. 이런 센스의 여왕을 보았나. 더불어 그녀의 색채를 보다 뚜렷이 알게 된 계기도 된 것 같다.

13. 요단강 by 요나

재작년 못과의 조인트 콘서트
때 네스티요나를 만났던 지라 그녀의 카리스마가 두렵지는 않았지만, 독특함이나 감수성에서 못에 못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정했다.

14. My Favorite Thing (Org. Sound of Music OST) by 요나+이언+한희정

요정 같은 요나의 마력에 취해 있을 때 검은 모자에 마법사처럼 등장한 이언에 의해 극도의 황홀감을 맛보았다. 한희정은 목소리를 듣고 상상했던 외모와 흡사해서 나를 놀라게 했고. 시너지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만큼 절묘한 앙상블을 선사하는 세 사람에 의해 몸이 간지러워 배배 꼬였다.
하지만 이 무대 자체에는 놀라지 않았다. 2년 전 처음 못의 라이브를 보았을 때 나는 이언을 감독이라 칭했었다. 마치 한 편의 연극 같은 연출이 앞으로의 공연들에서도 더욱 발휘될 것이라 예상한다. 못은 본질적으로 충분히 문학적이고 시각적이다. 최종 형태가 음악일 뿐. 나는 이언의 전략적 재능과 지이의 타고난 쇼맨쉽을 이미 믿고 있다.

15. Drama by 한희정+이언

사실 한희정의 음색은 딱 내 취향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오히려 놀라운 점은 못과의 조화이다. 게다가 직접 작곡을 한다니. 곡 짓는 이를 가장 사랑하는 나로서는...

16. 서울은 흐림 by 이언+한희정

정말이지 대안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한희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언이 홍보를 부추긴 그녀의 솔로 앨범을 기다려 보아야겠다.

17. Heaven Song

2집 발매 즈음부터 최근까지 예외적으로 바빴었다. 1집 만큼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로 콘서트에 오니 역시 아쉽고 혼자 미안했다. 세 마디가 지나가는 데도 무슨 곡인지를 몰라 혼자 어리둥절했던 민망한 기억. 팬으로서 용서될 수 없는 죄를... 제목을 공모하셨을 때 나도 응모했었는데 말이다.

18.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2집 발매 후 첫 콘서트라 더욱 남달리 들렸다. 오늘의 모습은, 괜찮지 않아도 기념일이 되지는 않게 했던 날들의 결과일지도.

19. 자랑

뜨지 않았다고 하셨을 때 속으로 '떴는데...' 하며 반항하고 싶었다. 그래도 질타하시면 반성할 수밖에.

20. 11 over 8

2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이 곡을 능가하는 음악이 못이 아닌 다른 데서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내가 음악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21. Close

역시 라이브임을 무색케 하는 연주. 내가 모를 고민과 연습의 시간이 짐작되어 정말 존경스러웠다.

22. 다섯 개의 자루

헉! 이거 하시다니! 어쩐지 무대 뒷쪽으로 물러서 시종일관 고개를 숙인 모습이 의아했었는데, 립싱크였다고 고백하시던 이언 님. 근데 어쩌나... 립싱크를 무릅쓰셨다는 사실이, 그 마음이 더욱 감동인 걸.

23. What a wonderful world

변함없이 귀가 행복한 곡. 이번에도 듣게 될 줄 정말 몰랐기에 더 좋았다.

24. 날개

아무래도 의상 전문가의 지원을 받으신 것 같은데 그 분께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비주얼 스타일을 찾은 못! 자자, 이제 빌보드만 남았나.


-앵콜

25. Cold Blood

언제나 그렇듯이 못 공연의 마지막은 믿기지가 않아서 힘들다. 나도 ghost를 외쳤었다. 여기저기서 같은 목소리가 나왔으니 팬들 마음이 대체로 같았나 보다. 그래도 앵콜 곡으로는 cold blood라... 불만이 있을 수 없겠다.
노래가 끝나고 몹시도 재빠르게 기타를 내려 놓고 무대 뒤로 빠져 나가는 이언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은 왠지 관객을 의식해서가 아닌, 멤버들에 대한 암묵적인 의사 표현 같았다. 강력한 오라를 뿜는 단호함이... 말하자면 우두머리(?)로서의 지휘 같았다. 그러한 종류의 인상은 처음 받는 것이라서 나는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떤 의도인지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는 나로서는 궁금증이 컸다. 무언가 몰랐어야 하는 것을 엿본 기분도 들었고. 앙콜을 외치는 팬들의 외침이 연호가 되었을 때 동참하는 것을 잠시 망설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나의 궁금증이 풀렸다.

26. Midnight Radio (Org. Hedwig OST) by Z.EE

아픈 지이 님이 준비해 온 앵콜 송. 그러니까 이언 님의 그 행동은 일종의 보호 의식의 발현이었던 것이다. 지이 님에 대한. 헤드윅의 존 카메론 미첼(John Cameron Mitchell)이 내한 때 못의 날개를 부른 것에 대한 응답으로써 콘서트를 훌륭하게 마무리 지은 백미 같은 무대였는데, 나는 밴드 내부에서 오가는 사실 내가 알 수가 없는 것들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조금 복잡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생각들이기는 했지만. 이럴 때면 나의 지나친 민감성이 부담스럽다.
지이 님의 에너지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던 바라 놀라움 없이 벅찬 감정을 누렸다. 팬으로서의 욕심보다 미안함이 커서 할 수만 있다면 도로 돌려 주고 싶었다. 내 즐거움을 위해 못이 무리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진짜로 좋아하니까. 나한테는 못이 그대로 있어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다른 때와 달리 돌아서는 마음이 덜 힘들었던 것은 받기 미안한 정도로 받았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아쉬움 마저 허락하지 않았던 고마운 못. 



사인회가 있었다. 그동안도 계속 있었지만 소심함에 발걸음을 돌렸다가 이번에는 공식이라 나도 용기를 내어 보았다. 공연을 아홉 번째 가서야 처음으로 사인을 받다니. 너무 좋아하면 사인 받기도 힘들다는 걸 아는가? 너무 좋아하면 반경 2.5m 이내에 접근할 수가 없다. 너무 좋아하면 바라보기만도 아깝다. 뭐든 적당히가 좋은 것이다. 주고 싶은 선물이 있는데 3년 째 못 드리고 있다. 또한 적당히 좋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인 받을 줄 알았으면 가져갈 걸 그랬다.

마치 1초가 1분 같았다. 이언 님의 얼굴은 아예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 바보 같았던 의문문이란...), 여러 개 받아도 된다는 대답까지 들었건만 너무 긴장한 탓에 두 개만 받았고, 사실 수첩에는 받고 싶은 내용도 있었건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는길에 어찌나 후회가 되던지. 그래도 이언 님을 대하니 꿈에서 내 멋대로 만나 행복했던 게 한 번도 아닌지라 죄책감이 밀려와 표정이 딱딱해졌던 것, 지이 님과 실수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던 것들을 생각하면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자위도 해 본다. 내가 기다리는 줄의 거의 마지막에 있었기에 피곤하시고 팔도 아프실 거라는 걱정에 참은 것도 있었고. 하여간 못 말릴 일이다.

두 분 사이에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는 뻔히 그게 긴장한 사람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행동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대었다. 왠지 그걸 보고 계신 듯한 착각이 들어서 더 참담했다. 사실 나는 스스로를 한 번도 소심하다고 여긴 적이 없다. 그런데 못 님들 앞에서 소심해지는구나. "I'm a creep." 참 신기했다. 이건 완전히 푹 빠진 이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남들이 한다는 사랑이나 연애 같은 걸 하면 이렇게 되나 보다. 내 나이가 몇 갠데 처음으로 느끼게 되다니. 게다가 상대를 보라. 적어도 내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 세계 최고의 음악을 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완벽성에 대해 나같은 비전문가도 한 시간 정도는 거뜬히 설명해 줄 수 있다. 내 눈은 높았던가 보다. 나는 앞으로도 홀로일 가능성이 너무 높은 것 같다.

지이 님이 수결하시는 동안에는 더욱 현실감각이 없어진 덕분에 미친 척하고 '빨리 나으세요.'라고 했다. 원래 목소리가 작은 게 지병인 데다가 내 귀에도 안 들리기에 못 들으셨겠지 했는데 '죄송합니다.' 하셔서 깜짝 놀랐다. 꼭 들으시라고 했다기보다는 그냥 기원 같은 거였기 때문이다. 아기한테 '코~ 다 나아라~' 하는 식으로. 사실 두 번 놀랐다. 미안하시라고 한 말이 아니었기에 도리어 너무 죄송했다. 공연 후에도 쉬지 못하시고 속으로 앓으시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번째 앵콜 이후 재입장하셔서 마지막까지 열창을 하셨던 게 감동이고 안쓰럽고 그래서 소심함보다 도의감이 앞서 건넨 말이었는데 말이다. '그, 그게 아니라...'를 웅얼이며 도망치듯 물러나왔던 것 같다. 난 정말 팬이 맞나 보다. 몇 달 전 원로 배우들이 출연한 연극에서 감기 때문에 연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인간적인 안쓰러움보다 소비자로서의 피해의식이 더 컸던 기억이 있다. 내가 그때 작품 때문에 공연장에 갔던 것이 아니라 그녀 때문에 갔었다면 달랐을까? 그럼 나는 오늘 콘서트에 못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보다도 못을 보기 위해 왔던 것인가?

무언가를 숭배하는 자의 행복이란 겪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다. 나는 사랑하고 존경하며 고맙고 아끼며 지배되고 인도되는 숭배의 기쁨을 누리며 산다. 못 님들이 전에 비해 정신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왠지 생활상이) 안정되신 것 같아 굉장히 안심이 된다. 이 기쁨이 내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이루어질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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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7/09/12 22:24 # 삭제 답글

    오, 훌륭한 글이군요. 사실 구구절절 '팬심'과 애정이 흘러넘치는 글이구요.
    공연 내내 음향세팅이 맘에 들지 않아 가슴이 쓰렸는데, 그럼에도 헤어날 수 없는 심각한 중독 상태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님의 후기를 보니 다시 그 날이 떠오르네요.
    반가웠습니다.
  • aidos 2007/09/13 14:12 # 답글

    열혈팬이라 어쩔 수 없이 일시적이지 않은 감정 과잉이... (' ')^
    계셨군요! 특별한 인연입니다.
    못의 미묘함을 증발시켜 주던 음향 때문에 정말 아쉬웠지요. 저 역시 마구 허우적거리기는 했습니다만.
    반갑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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