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 展: <만종>과 거장들의 영혼 소통 疏通


오르세 미술관 展
<만종>과 거장들의 영혼

orsay2007.co.kr
town.cyworld.com/orsay



2007-04-24 불 낮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제5,6전시실: 엄마

(먼저, <피리 부는 소년>을 전면에 삽입한 전시 포스터를 중간에서 무식하게 자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모네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오르세와 루브르를 통해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이 한국으로 단체 나들이를 온 것이 몇 번째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열 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파리에 도착해 봐야 단기 여행이라면 (에펠 탑에도 올라가야 하고 몽마르뜨에도 발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넓디 넓은 루브르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작품들을 보고 돌아올 수 있을까를 고려하면 더 이상 망설일 수 없는 걸음이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밀레의 <만종>. '교과서에 실렸던 그림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선전 문구마저 틀림없는 사실이 아닌가.



Jean-François Millet
L'Angélus
1857
huile sur toile
H. 0.555 ; L. 0.66
musée d'Orsay, Paris, France
©domaine public


'이발소 그림'이라는 오욕인지 영광인지에 부끄러워해야 할지, 동조해야 할지,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그림에 대하여 명성만큼의 감동을 느끼지는 못하겠노라는 말 따위는 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실은, 어릴 적 우리 집 거실 벽에도 이 그림의 도판본이 걸려 있었다. 글은 커녕 말도 잘 모를 때부터 매일같이 보고 자란 그림인 것이다. 어머니도 좋아하시지만 아버지가 특히 좋아하셔서 걸어 두셨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 기억 속에서는 아내가 왼쪽에 남편이 오른쪽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어머니가 웃으셨는데 (어머니의 기억으로는 서강대학교가 신촌 로터리에서 실제와 반대편에 있었기에 놀라셨던 적이 있었다니) 사람의 기억의 왜곡 현상이란 참 흥미로운 연구대상이 아닐 수 없다. 작품이 가지는 역사적, 사회적 의미는 생략. 밀레 중에서도 특히 이 작품은 관객이 느끼는 감동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지 않나 싶다. 그러므로 예술성에 대한 나름의 감상도 생략.
어릴 때의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했었다. 보충 설명하자면, '저 사람들과 똑같은 훌륭한 미덕을 가지되, 저런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지'하고 생각했었다. 그 때는 너무 어려서 사회 구조나 부조리, 계급, 물질, 자본, 직업, 우열 등에 관해 아무런 개념이 없었을 때이다. 사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가난이나 육체 노동에 대해 막연하게 미화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종종 그렇듯이. 그러니 아마도 그들의 고됨이나 가난 또는 노동에 대한 회의였다기보다는 그들의 '극도로 수용적인' 태도라던지 변화의 욕구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반복된 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던 게 아닌가 한다.
이제 경제적 풍요와 정신 노동을 추앙하는 타락 또는 성숙한 영혼으로서 오랜만에 <만종>을 마주한 내게 든 생각은 '저 부부는 정녕 몸짱이로구나'였다. 화내지 마시고 좀 보시라. 팔등신을 넘고 있지 않은가. 다리만 긴 것이 아니다. 특히 새댁. 저 균형 잡힌 몸매. 도시로 데리고 가서 옷만 바뀌어 입히면 당장 잡지 표지 모델도 무리 없을 것 같다.
불후의 명작들이 대개 그렇듯 이 그림에도 몇 가지 루머가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조그만 수레 안에 죽은 아이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근대적 성화를 공포물로 바꾸는 이 같은 악성 루머는 전시장 입구에서 유료로 대여할 수 있는 관람 가이드 녹음기에서는 들을 수 없다.
결론은, 나도 밀레를 사랑하고 존경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Vincent Van Gogh
La chambre de Van Gogh à Arles
1889
huile sur toile
H. 0.575 ; L. 0.74
musée d'Orsay, Paris, France
©domaine public


너무나 전폭적으로 매니아적인 사랑을 받는 나머지, 좋아한다면 오히려 매니아가 아니게 만들어 버리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본디 한 포스트에 여러 개의 이미지를 올리는 것을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예외를 두게 된 것 또한, 여기에서 보건 보지 않건 이미 다들 잘 알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만종> 하나만으로도 전시장을 찾는 사람과 이 그림 <아를의 반 고흐의 방>(일명 '파란 방') 하나 때문에 전시장을 찾는 사람이 비등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그 '푸른 벽'의 진짜 색조를 드디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내 기대보다는 흐렸다.
알다시피, 아를에 머무는 동안 고흐는 가장 많은 그림을 그렸고 자신의 왼쪽 귀를 잘랐다. 광기로 표출된 그의 내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기록에서 고흐가 자신의 작업을 농부의 노동과 동일하게 여기고 얼마나 경건하고 엄격하며 겸손하고 성실하게 생활했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바로 이 방에서 쉬고 자면서.
고흐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고 자살로 짧은 생을 마쳤는데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래서 언젠가 계산해 본 적이 있다. 도대체 작업량(또는 속도)이 어느 정도나 되었는지 궁금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직 습작 단계에 머물렀던 시기서부터 따져도 거의 이틀에 하나 꼴로 완성한 정도였나...? 소름이 끼치다 못해 다리가 후들거리는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인상주의 화법은 대개 오랜 (작업도 작업이지만 관찰) 기간을 요한다. 즉, 그는 동시에 여러 개의 작품을 진행해 나갔던 것이다. 무조건 아침 7시부터 그리기 시작해서 들판에 선 채 싸 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그린다는 편지 속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도대체 언제 고갱과 싸울 시간이나 있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그는 정말로 미친 듯이 그렸던 것이다.
참고로, 전시회에 가게 되면 가이드를 대체한 안내 멘트 녹음기를 꼭 대여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고흐 서간집 등 고흐 관련 자료라면 한 두 개 읽었던 것도 아니건만, 녹음기를 통해 듣게 된 설명에는 내가 잘 모르던 사실들도 있었다.



Claude Monet
La charrette. Route sous la neige à Honfleur
1862
huile sur toile
H. 0.65 ; L. 0.925
musée d'Orsay, Paris, France
©ADAGP


모네. 이외에도 수많은 걸작들이 있었지만, 아니 전부가 하나같이 명작이었지만, 내가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모네의 이 그림이다. 위에 올린 이미지는 오르세 미술관의 홈피에서 가져왔음에도 화질의 극악함으로 인해 아무 것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으니, 전시장에서 보기 전에는 아니 본 것이나 다름이 없다. 떨리는 마음으로 검색한 후 웹페이지에서 이걸 보고 어찌나 충격을 받았던지...
녹음기의 멘트에 따르면 길가의 허름한 창고에서 당시 모네가 존경하던 화가들이 모임을 가졌었다고 한다. 빛과 물질의 관계를 연구했던 모네의 열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런 설명을 듣지 않아도 '너무나 진짜 같은' 인상주의의 풍경이 뇌리에 인장을 찍는 듯한 깊은 인상을 준다. 하늘의 눈구름과 뒷쪽 나무숲을 덮은 눈, 길가의 눈, 길 위의 눈, 지붕 위의 눈... 서로 너무나 다르고 생생하다. 마치 그림이 아닌 동영상을 본 것 같다.


ref.
Jean-François Millet @musée d'Orsay
Vincent Van Gogh @musée d'Orsay
Claude Monet @musée d'Or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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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4월 27일 이오공감 2007/04/27 14:23 #

    드디어 발견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의 행성  by neclipse우주에 생명체가 살 수 있다고 생각되는 환경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우주에서 "외계의 생명체"를 찾는 많은...프로파간다의 극치, 그리고 극복 - 제11회 베를린올림픽  by oldman우리에게는 고(故) 손기정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암울했던 식민지 치하에서 남의 나라의 대표가 되어 달려야했고 금메달을 차지했을때 보여주었던....... more

덧글

  • marlowe 2007/04/26 11:54 # 답글

    마지막 그림이 너무 좋군요. 꼭 가봐야겠습니다.
  • ALBINO 2007/04/27 16:21 # 답글

    만종의 그 악성루머, 상당히 좋아했는데요. 멀쩡한 그림에 엑스선을 쬐인 다는게 괴상하기는 했지만, 그걸 들은 다음부터는 괜시리 한 번 더 보게 되어서...
  • 마르스 2007/04/27 16:31 # 답글

    전시회 괜찮은가보네요. 9월까지니 여유있게 평일에 하루 시간내서 가봐야겠어요.
  • 단미 2007/04/27 21:34 # 답글

    새삼 스럽네요..어릴적 부터 참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예사롭지 않았군요..놀라워요..
  • NINA 2007/04/28 02:40 # 답글

    이럴수가 -_- 지난주에 오르세 미술관에 갔었는데.. 작품들이 한국 가 있었군요!
  • 상붐 2007/04/28 11:08 # 답글

    그림은 괜찮은데 전시 자체는 완전 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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